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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金庾信)

김유신 중악석굴 사진

김유신 중악석굴

김유신(金庾信·595~673))은 595년 아버지 김서현과 어머니 만명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멸망한 금관가야 왕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해이며, 할아버지는 관산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무력이다. 어머니인 만명부인은 진흥왕의 아우인 숙흘종의
딸이다. 열다섯 살에 화랑이 된 김유신은 2년 뒤, 외적을 평정할 뜻을 품고 홀로 팔공산 중악 석굴에 들어가 수련했다. 이때 난승(難勝)
이라는 신비의 노인을 만나 삼국통일을 성취할 비법을 전수받았다. 팔공산 중악석굴은 중암암 뒷산에 있는 석굴로 세칭 극락굴이라 한다.

김유신은 진평왕 51년(629년)에 아버지 김서현과 함께 참가한 고구려 낭비성 전투에서 홀로 적진에 뛰어들어 적장의 목을 베고 선봉에서
돌격하여 고구려군 5,000여 명의 목을 베고 1,000여 명을 사로잡는 전공을 세웠다. 김유신은 642년 압량주 군주가 되었고, 644년 가을에
상장군이 되어 백제의 7개 성을 공격해 대승을 거두었으나, 백제가 매리포성을 공격하자 다시 출정하여 백제군 2,000여 명의 머리를 베
었다. 선덕여왕을 이은 진덕여왕이 재위 8년 만에 붕어하자 김유신의 후원에 힘입어 김춘추가 즉위하였다.

660년 황산벌에서 백제의 계백을 무너뜨린 김유신은 소정방의 당나라 군대와 합류하여 백제의 수도 사비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백제를 멸망시킨 공으로 김유신은 대각간이 되었다. 백제부흥군을 평정한 신라는 668년 당나라와 함께 고구려를 공격하여 그해 9월
평양성을 함락시켰다. 고구려를 멸망시킨 공으로 태대각간의 자리에 올랐던 김유신은 673년 7월 1일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흥덕왕은 삼한일통의 공을 기려 김유신을 흥무대왕에 봉했다.

김유신 중악석굴(극락굴 입구) 사진

김유신 중악석굴(극락굴 입구)

김유신 묘비문 탁본(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이미지

김유신 묘비문 탁본(국립중앙박물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