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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태조 왕건(王建)

왕산(왕건) 사진

왕산(왕건)

왕건은 877년에 송악(지금의 개성 지방)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왕륭이 궁예에게 충성을 맹세하자, 궁예의 신하가 된 왕건은 전공을 세워
궁예의 신임을 얻었다. 궁예가 공포정치로 민심을 잃자 918년에 홍유, 신숭겸, 복지겸, 배현경 등의 장수들과 함께 궁예를 몰아내고 왕위
에 올라 국호를 고려라 했다.

왕건은 신라와는 우호관계를 유지했으나 927년에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를 공격해 경애왕을 죽이자, 신라를 구원하기 위해 출병했으나
공산동수(公山桐藪)에서 후백제군과의 전투에서 포위되어 위급한 상황에 처했으나 신숭겸과 김락의 희생으로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났다.
공산동수 전투에서 견훤에게 패했으나 신라의 민심을 얻어 후일 신라가 귀부(:스스로 와서 복종함)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팔공산 곳곳에는
왕건과 관련된 지명과 설화가 지금도 남아있다.

왕건은 930년 고창(지금의 안동)전투에서 크게 승리하여 후삼국의 주도권을 잡고 935년에 신라의 귀부를 받았고, 936년 후백제를 멸망시
켜 후삼국을 통일했다. 왕건은 고려가 고구려를 이어받은 나라임을 밝히고, 청천강 하류에서 영흥 지방까지 영토를 넓혔다. 또한, 거란에
게 멸망한 발해유민들을 포용하고 거란과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왕건은 혼인정책으로 호족들의 지원을 끌어내는 한편, 각 지방의 유력자
에게 왕씨 성을 내렸다.

불교를 장려하여 오랜 전쟁으로 상처 입은 백성들의 마음을 안정시켰으며, 훈요십조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