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

본문 내용으로 바로가기 메뉴으로 바로가기
임을 온전케 하온 마음 하늘 끝까지 미치니
첫화면으로 이동 > 인물 > 인물 > 류방선(柳方善)

류방선(柳方善)

류방선((柳方善·1388∼1443)의 자(字)는 자계(子繼), 호(號)는 태재(泰齎), 본관(本貫)은 서산(瑞山)이다. 아버지는 좌명삼등공신(佐命三
等 功臣)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 서녕군(瑞寧君) 류기(柳沂)이며,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로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손녀이다.

태종 4년(1404년) 17살에 외증조(外曾祖) 목은(牧隱) 이색(李穡) 선생의 문인인 양촌(陽村) 권근(權近)과 춘정(春亭) 변계량(卞季良) 두 분
문하에서 성리학과 문장을 배웠다. 태종 9년(1409년)에 아버지 류기(柳沂)가 원경왕후(元敬王后)의 동생 민무구(閔無咎)ㆍ민무질(閔無疾)
형제의 옥사에 연루되어 해남(海南)에 유배되었다가 주살(誅殺)되자, 아버지 죄에 연좌되어 청주(淸州)에 유배되었고, 이듬해 영천으로
이배(移配)되어 팔공산 송곡(松谷·지금 영천시 청통면 애련리)에서 귀양살이를 하였다. 이곳에 태재정사(泰齋精舍)를 짓고 성리학(性理學)
과 주역(周易)을 연구하니, 선생의 문명과 학덕을 듣고 원근(遠近)에서 구름같이 모여든 제자들을 위한 강학에 힘썼다. 또한, 팔공산의
자연을 사랑하여 ‘등천왕봉(登天王峰)’을 비롯한 여러 수의 시를 남겼다.

태종 15년(1415년)에 귀양에서 풀려나 고향 원주에 돌아왔으나 모함을 받아 다시 팔공산에 유배되었다가, 세종 9년(1427년) 41살에 귀양
살이에서 풀려났다. 그 뒤 세종이 주부(注簿)의 벼슬에 임명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세종은 유배 중인 류방선에게 집현전 학사를 보내
왕복 질문을 하니 사림에서는 선생을 태산북두(泰山北斗)와 같이 앙망했다.

류방선의 문인으로는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소한당(所閑堂) 권람(權擥)·압구정(鴨鷗亭) 한명회(韓明澮)·괴애(乖崖) 김수온(金守溫)·
진일(眞逸) 성간(成侃)·대전(大田) 이보흠(李甫欽) 등 이었으니 당대의 명유와 명상들이었다. 그의 문학의 전통은 진일(眞逸) 성간(成侃)·
괴애(乖崖) 김수온(金守溫)에 전해지고, 양문(兩門)에서 허백당(虛白堂) 성현(成俔)이란 문호가 배출되었으며, 그의 문하에서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이 나왔다. 뒤이어 모재(慕齋)의 문하에서 초당(草堂) 허엽(許曄)·난설헌(蘭雪軒) 허초희(許楚姬)·교산(蛟山) 허균(許筠)이
나오는 등 문단을 용동(聳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