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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국사 지눌의 정혜결사(定慧結社)

정혜결사(定慧結社)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은 원효(元曉·617~686)와 함께 팔공산을 대표하는 고승의 한사람으로 한국불교의 사상적 전통을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원효가 원융회통(圓融會通)의 사상적 기초를 세웠다면, 지눌은 원융회통(圓融會通)의 사상을 계승하여 확립했다고
할 수 있다.

고려 중기에 일어난 이자겸과 묘청의 난, 무신정변(武臣政變), 몽골의 침입 등과 같은 정치적 변란에 불교계도 휩쓸렸을 뿐만 아니라, 교종
과 선종이 서로 대립하여 갈등이 심화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고려불교의 타락된 현실을 바로 잡고자 했던 신행운동이 바로 지눌의 ‘정혜
결사(定慧結社)’이다. 정혜결사는 ‘선정(禪定)과 지혜(智慧)를 함께 닦아 본래 부처님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신행공동체 운동이었다. 지
눌은 25세의 나이로 승과에 급제하여 동지 10여명과 함께 출세를 단념하고 정혜결사를 약속했다. 그 뒤 공산 거조사에서 정혜결사(定慧結
社)를 결성하고 명종 20년(1190년)에 『근수정혜결사문(勤修定慧結社文)』을 천하에 발표하여 ‘정혜쌍수(定慧雙修) 습정균혜(習定均慧)’
를 실천에 옮겨 선교(禪敎) 통합을 주장했다.

정혜결사의 이념

지눌은 ‘마음이 곧 부처다(心卽佛)’라고 하면서 ‘마음을 밖에서 찾지 말라(切莫外求)’고 강조하여 수심불교(修心佛敎)를 통해 타락한 고려
불교를 치유하고 정법을 구현하고자 했다. 지눌은 ‘부처가 입으로 말한 것은 교(敎)요, 조사(祖師)가 마음으로 전한 것은 선(禪)’이라 하여
선과 교가 둘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문자에만 집착하여 대장경을 다 읽거나, 언제나 눕지 않고 앉아서 참선하더라도 마음을 관(觀)하지
않으면 모두 헛수고’라고 설파한 것이다. 교종과 선종의 잘못을 지적한 ‘선교융회(禪敎融會)’는 정혜결사의 중요한 이념으로 원효의 화쟁
사상(和諍思想)과 더불어 한국불교의 사상적 전통을 확고하게 세우는 바탕이 되었다.

정혜결사의 영향

지눌은 정혜결사를 통해 수심불교(修心佛敎)를 확립하고 선종과 교종의 대립에서 벗어나 선교일치(禪敎一致)를 추구하였으며, 근기에
맞는 수행체계를 제시하여 한국불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같은 시기에 전개된 백련결사(白蓮結社)를 비롯하여 만해 한용운의
불교유신운동뿐만 아니라 현대에 일고 있는 대중불교결사와 선우도량 등도 정혜결사에서 정신적, 이념적으로 큰 영향을 받았다. 지눌의
정혜결사는 조선시대 강원교육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수심불교의 확립, 선교융회, 정혜쌍수 실천, 이타자비(利他慈悲)의 정혜결사의
이념이 강원의 교육이념에 그대로 전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