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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대사(心地[智]大師)

동화사의 창건 조사(祖師)

심지대사는 신라 헌덕왕(憲德王·재위 809~826)의 태자(太子)이다. 동화사의 창건 조사(祖師)다. 중악(中岳)에 주석(駐錫)하고 있었는데,
주지 영심대사(永深大師)가 사부(師傅) 진표율사(眞表律師)로부터 전해 받은 간자(簡子) 전수 법회에 참석하고자 속리산(俗離山) 길상사
(吉祥寺ㆍ現 法住寺)로 달려갔으나 늦게 도착하였고, 이미 당우(堂宇), 방장(方丈), 승방(僧房)이 만당(滿堂)이라 들어갈 수 없어서
엄동설한(嚴冬雪寒)에 절 마당에서 예배(禮拜)했다. 눈이 내리는데 심지(心地[智])가 앉았던 자리에는 눈이 내리지 않았다.
모두 이상히 여겨 심지(心地)를 당방(堂房)으로 안내했다.

법회를 마치고 중악(中岳)으로 돌아가는데 불골간자(佛骨簡子)가 그의 옷섶에 와 있었다. 이에 돌아가 영심(永深)에게 돌려주자 ‘이상하다
분명히 궤에 넣어 자물통으로 굳게 잠가 비장(秘藏)해 두었는데’ 하며, 궤짝을 열어보니 간자(簡子)가 없었다. 그대로 받아 더 안전하게
잘 갈무리했다. 다시 공산(公山)으로 돌아가는데 고개를 넘으니, 다시 간자(簡子)가 옷섶에 와 있었다. 이를 영심(永深)에게 돌려주자
이상하게 여기고 궤짝을 열어보니, 또 간자가 없어졌다. 영심(永深)이 눈을 감고 깊이 생각하고 나서 간자를 심지(心地)에게 주면서
‘부처님의 뜻이 자네에게 있으니 가져가서 잘 안치하고 모셔야 한다’고 말했다. 심지(心地)가 간자(簡子)를 가지고 공산(公山)에 돌아오니,
공산산신(公山山神)이 이선자(二仙子)를 대동하고 산 정상에서 예배(禮拜)하여 맞이했다. 같이 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부는 바람에 날렸
더니 지금 동화사 금당암 자리에 떨어졌고, 이곳에 간자를 모시는 절을 지었다. 심지(心地)는 절 동수(桐藪)에 주석(駐錫)하였다.
동화사(桐華寺)를 창건 시에는 동사(桐寺) 또는 동수(桐藪)라 하여 절 이름이 외자였다.
고려시대에도 변함없이 동사(桐寺)였다.

신라 민애왕의 사리탑 삼층석탑(三層石塔)

신라 민애왕(敏哀王ㆍ재위 838∼839)의 대군(大軍)은 신무왕(神武王)을 원조하는 장보고(張保皐)의 5,000 대군과 달구벌에서 대회전(大會
戰)을 벌였으나 대패하여 경주로 퇴각하고, 왕경(王京)에서 민애왕(敏[閔]哀王)은 시해(弑害) 당했다. 경문왕(景文王) 3년(863년) 함통
(咸通) 4년에 현재 동화사(桐華寺) 비로암 자리에 왕의 원당(願堂)으로 동사(桐寺)를 짓고, 민애왕 사리탑(舍利塔)인 삼층석탑(三層石塔)
을 세웠다. 이 역사(役事)를 관장한 이가 전지대덕(專知大德) 심지(心智)였다.동사(桐寺)의 창건주로 유명하고,이곳에 오랫동안 주석했다.

심지(心地)는 진표(眞表), 영심(永深)과 함께 법상종(法相宗)의 3대(代) 조사(祖師)로 숭앙된다.

※ 참고문헌 : 三國遺事 心地繼祖. 桐華寺 毘盧庵 三層石塔 舍利壺敏哀大王 願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