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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대사(箕城大師) 쾌선(快善)

송림사 기성대사비 사진

송림사 기성대사비

탄생과 출가

대사의 속성은 류씨(柳氏)요, 관향은 문화(文化)이다. 아비는 시흥(時興), 벼슬은 동지(同知)다. 어미는 황 씨(黃氏)다.
숙종 19년(1693년)에 칠곡부(漆谷府)에서 탄생했다. 13살에 팔공산 송림사(松林寺)에 입산하여 14살 때 민식대사(敏湜大師)의 문하에 삭발
하고, 16살에 서귀대사(西歸大師)에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도덕산(道德山) 태조(太照)대사 문하에 찾아가 수학(受學)하고, 낙빈당(落
賓堂) 홍제(弘濟)대사 문하에 찾아가 불교제경(佛敎諸經)을 수학하여 불교 여러 경전을 공부 연구함에 타(他)의 진도를 불허(不許)하는
불법의 진경(進境)을 보였다.

대사는 당대(當代) 사문(沙門)의 명필(名筆)로 명성이 용동(聳動)했다. 그의 필법은 준건유동(遵建流動)하여 각처에서 대사의 필서(筆書)
를 받으러 오는 사람으로 문전에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대사가 쓴 각 사찰의 편액, 현판, 주련이 많았다.
25세에 고율엄(高律嚴)에서 배움에 낙빈당(落賓堂)대사가 드디어 인가(印可)를 주었다. 대사의 고매한 학식과 조어(造語), 경륜(經綸),
강연(講演)을 듣고 감탄과 존경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공산(公山)의 정기를 받다

대사는 진리의 탐구를 위하여 전국의 명산대천(名山大川)과 사찰(寺刹)를 탐방순력(探訪巡歷)했다. 동화사(桐華寺). 송림사(松林寺)의
주지를 맡아 동화사에서 80화엄경을 불철주야로 강독하며 깊이 천학(穿學)했다. 그는 꾸부린 채 선잠을 자며 법의(法衣), 내의(內衣)가
더러워도 개의치 않고 세속(世俗) 만사(萬事)에는 관심이 없었다. 항상 법성(法性)을 바르게 지켜 원융(圓融)하니 세인(世人)이 공산의
정기를 받은 스님이라 칭송했다.

입적(入寂)

영조 39년(1763년) 수행을 마치고 동화사에 주석하기 1년에 선본사(禪本寺)로 목암장로(牧菴長老)의 문병을 갔다. 열반경(涅槃經) 강설
(講說)을 마치고 조용히 계시다, 이튿날 고요히 열반하였다. 세수(世壽) 72이요, 승랍(僧臘) 59이었다. 각처에서 수많은 문도(門徒)들이
모여 유언에 의하여 동봉(東峯)에서 차비(茶毘)하고, 상봉대사(霜峰大師) 부도(浮屠) 아래에 부도를 세웠다. 이는 그의 법계(法系)가
상봉(霜峰) - 낙빈당((落賓堂) - 기성(箕城)으로 사자법사(師資法嗣)했기 때문이다.

대사는 일세(一世)의 고승대덕(高僧大德)이요, 화엄경의 종사(宗師)로 부종수교(扶宗樹敎) 임제하(臨濟下) 31세(世)이다.

※ 참고문헌 : 有明朝鮮國扶宗樹敦臨濟下三十一世箕城大師行蹟碑銘幷序.
                   通政大夫弘文館副提學知製敎兼經筵參贊官 春秋館 修撰官 李瀰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