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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山)자락에 깃든 구세와 호국의 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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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암 마애보살좌상

염불암 마애아미타좌상 사진

염불암 마애아미타좌상

염불암은 신라 경순왕 2년(928년)에 영조선사(靈照禪師)가 창건했다고 전하며, 고려시대에는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ㆍ1158~12
10)이 중창했고 원진국사(圓眞國師) 승형(承逈·1172∼1221)이 주석했던 유서 깊은 난야(蘭若)이다. 극락전 뒤에 있는 세모진 큰 바위의
서쪽면과 남쪽 면에 새겨진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과 마애보살좌상(磨崖菩薩坐像)은 대구광역시유형문화재 제14호(1988.05.30.)
로 지정 되었다.

거대한 화강암의 남쪽 면을 평면으로 다듬어 높이 6.4m, 무릎 폭 3.27m 크기의 불상 1구(軀)를 양각(陽刻)으로 팔공산에서 가장 규모가
큰 마애불을 새겼다. 보살상은 머리에 부채꼴 모양의 보관(寶冠)을 쓰고 있고, 얼굴은 네모반듯하나 인중이 짧아 다소 어색한 느낌이 있지
마는 아래를 내려다보는 눈은 엄정하기만 하다. 보살상임에도 법의(法衣)를 입고 있으며, 옷자락은 왼쪽 어깨에서 내려와 양 무릎을 덮고
있다. 오른쪽 손목과 팔뚝에 보살을 상징하는 영락(瓔珞) 장식을 착용하였으며, 오른손은 검지와 약지로 꽃가지의 가운데를 살며시 잡았
으며, 왼손은 꽃가지 끝을 받쳤다. 연화좌에 앉아 오른쪽 다리를 내리고 왼쪽 다리는 대좌 위에 자연스럽게 올려놓았다. 연화좌의 연꽃은
사실적으로 조각하였고, 특히 앙련(仰蓮)의 연꽃잎마다 선각(線刻) 혹은 부각(浮刻)하였다. 염불암 마애보살좌상은 간결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윤곽을 선으로 나타내고 있어 통일신라시대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마애불상은 ‘문수보살이 조각했다’ 하고, 또 ‘옛날 이 암자에 있던 한 스님이 바위에 불상 조성을 발원하자, 어느 날 암자 일대에 안개가
자욱하여 7일이나 계속되었다. 안개가 걷히자 바위에는 스님이 발원했던 불상이 양쪽에 새겨졌다’는 전설이 전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