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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山)자락에 깃든 구세와 호국의 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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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불암(眞佛庵)

진불암 전경 사진

진불암 전경

진불암의 창건

『진불암중수기』에는 ‘고려 공민왕 때 환암혼수(幻菴混修·1320~1392) 국사가 창건하였다. 그 뒤 인조 15년(1637년)에 이응추(李應秋)
가처(妻) 상옥(祥玉)과 함께 재창하였고, 순조 13년(1813년)에 징월대사(澄月大師)가 중건하였다’고 하였다. 1688년 정시한의 『산중일
기』에 ‘진불암’의 기록이 가장 오래되었다.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 석굴암 이야기

1942년에 간행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는 ‘팔공산 아래 진불암 계곡의 암석지 내의 일부 지역에 수도사에서 약 20정(町·약 2.2㎞),
진불암에서 수 정(약 0.4~0.5㎞) 떨어진 산 중턱에 있는 거대한 화강암 굴속에는 자연석에 조각된 높이 3척(약 90㎝), 흉폭 1척 8촌(약
54㎝)의 좌불 1체(體), 높이 3척 4촌(약 102㎝), 흉폭 1척 2촌(약 37㎝) 및 높이 2척 5촌(약 76㎝), 흉폭 1척 2촌(약 37㎝)의 수호불(守護
佛) 각 1체가 있다. 표면에 균열이 있지만 거의 완전하고, 다른 2체도 일부 파손된 부분이 있지만, 거의 완전에 가깝다. 더구나 부근에
분쇄되어 없어져 버린 것 2~3체가 있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에 의거 석굴과 불상을 찾기 위해 2006년에 영천향토사연구회와 경북대
학교 역사교육 학과 교수 및 학생들이 답사했으나 성과가 없었다.

팔공산연구소에서 공산폭포 아래 신시암 마을 주민의 제보로 진불암 길목에 ‘나무아미타불’이 새겨진 바위에서 맞은편 골짜기 산 중턱에서
화강암 석굴을 찾았다. 수도사에서 약 2.2㎞, 진불암에서 약 0.4~0.5㎞ 떨어졌다는 거리와 부합되어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기록된
석굴로 추정된다. 석굴 입구는 서북쪽이며, 높이 1.2m, 입구 폭 2.1m, 안쪽 폭 5m, 깊이 5m 정도지만 불상의 흔적은 확인할 수 없었다.
진불암에는 석굴암의 수호불로 추정되는 석불상을 봉안하고 있다. 석불상은 높이 58㎝, 폭 50㎝, 두께 12㎝의 화강암에 상반신을 양각(陽
刻)으로 조상했다. 이 석불은 진불암 입구에 있는 2기의 부도탑 뒤쪽 바위틈에 오랫동안 봉안됐던 것이다.

보현봉 삼층석탑

진불암은 팔공산 제일의 명당이다. 진불암의 오른쪽 보현봉(970m) 정상에 무너진 삼층석탑이 있다. 산 정상에 석탑을 세웠던 연유는 도선
국사의 ‘비보사탑설(裨補寺塔說)’로 추정된다. 비보사탑설은 땅의 기운이 쇠퇴한 곳에는 인간과 국가의 쇠망을 막기 위해 절이나 탑을 세
워 땅의 기운을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고려 태조는 비보사탑설을 신봉하여 훈요십조에서 ‘도선 국사가 정한 비보사탑 외에는 어느
곳에도 사탑을 세우지 말라’고 했다.

보현봉(970m)의 삼층석탑은 팔공산에서 유일한 비보탑이다. 1층과 2층 몸돌은 형태를 확인할 수 없고 3층 몸돌만 남아있다. 석탑의 높이
는 약 2~2.5m 정도로 추정되며, 고려 초기의 양식이다. 삼층석탑은 1층과 2층 몸돌과 기단부의 지대석과 면석, 갑석 일부를 제외한 대부
분의 탑재(搭材)가 주변에 흩어져 있다.

안내판 사진

안내판

요사 사진

요사

보현봉 석탑 부재 사진

보현봉 석탑 부재

입구 나무아미타불 사진

입구 나무아미타불

부도탑 사진

부도탑

법 사진당

법당

산령각 사진

산령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