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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山)자락에 깃든 구세와 호국의 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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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암암(中巖庵)

중암암 사진

중암암

중암암 창건

중암암(中岩庵)은 팔공산 천왕봉(1192m)에서 동쪽으로 뻗은 종주능선이 느패재를 지나 늑패산에서 동쪽으로 갈라져 인종대왕 태실봉
으로 이어지는 중간에 위치한 천인단애(千仞斷崖)에 제비집처럼 얹혀있는 작은 암자로 신라 흥덕왕 9년(834년)에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창건했으며, 순조 23년(1823년)에 태여사(太如師)가 중수했다고 전한다. 암자 입구의 바위가 자연적으로 형성된 석굴(석문)이라 예로
부터 돌구무(돌구멍) 절이라 했다.

중암암 대웅전(중수건물) 사진

중암암 대웅전(중수건물)

중암암 삼층석탑 사진

중암암 삼층석탑

김유신의 중악석굴

암자 뒤에는 집채만 한 거대한 화강암 덩이가 층층이 쌓여 만든 석굴이 있다. 석굴은 동서로 길게 뚫려있고 높이는 4~5m가량이며, 폭은
1m 내외, 길이는 10m 내외이다. 이 석굴이 김유신이 17세에 삼국을 평정할 맹서를 하고 신비의 노인 난승(難勝)에게서 삼한통일의 비법을
전수 받았던 중악석굴로 일명 장군굴이라 한다. 석굴 중앙에서 남쪽으로 갈라졌고, 다시 그 중간에서 서쪽으로 갈라져 마치 바위굴이 ‘口’
자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 굴을 돌아 나오면 극락에 간다고 하여 세칭 ‘극락굴’이라 한다.
김유신 장군이 수도했던 중악석굴은 남북에서 호석(虎石)과 용석(龍石)이 호위하고 있는 형국이다. 남쪽의 금당 터 뒤에 있는 큰 바위가
호석(虎石)이고, 석굴의 북쪽을 연하여 길게 이어진 바위가 용석(龍石)이다. 중악석굴에서 나와 북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김유신 장군이
수도하면서 마셨다는 장군수(將軍水)가 10m가 넘는 바위절벽 아래에서 지금도 솟아나고 있다.

중악석굴 사진

중악석굴

석문 사진

석문

건들바위와 만년송

건들 바위와 만년송(萬年松)을 만나려면 좁은 바위틈을 간신히 지나는 수고
를 해야 한다. 널찍한 너럭바위 위에는 두 토막 난 큰 바위의 크기는 길이가
7m, 긴 폭은 2m, 짧은 폭은 1m 정도로 건들 바위, 일명 동석(動石)이라고
한다. 건들 바위 옆에는 만년송이 너럭바위 틈에 뿌리를 깊이 내린 채 세 갈
래로 갈라져 우뚝하게 서 있다. 나무 높이는 7~8m 남짓하고 가지 둘레는
80㎝에서 140㎝ 정도지만 수령이 얼마인지는 알 수 없어 만년송이란 이름이
대신하고 있다.

중암암 건들바위 사진

중암암 건들바위

삼인암

중악석굴과 연해 동쪽을 향해있는 용석(龍石)의 머리에 ‘삼인암(三印岩)’ 3
글자가 새겨져 있다. 삼인암은 세 토막 난 바위가 1~2m 정도로 이어져 있어
훌쩍 넘어 다닐 수 있다. 삼인암에는 ‘자식이 없던 부인이 여기에서 정성을
들여 아들 삼형제를 낳았다’는 전설과 ‘어느 집안 아들 삼형제 혹은 친구 세
사람이 뜻하는 바가 있어서 이곳에 와서 정성을 들이고 힘써 정진하여 모두
뜻하는 바를 이루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삼인암 사진

삼인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