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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山)자락에 깃든 구세와 호국의 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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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봉암(妙峰庵)

묘봉암 원통전 사진

묘봉암 원통전

제10교구 본사 은해사에서 약 4.8㎞ 떨어진 묘봉암(妙峯庵)은 신라 흥덕왕(興德王) 9년(834년)에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창건했다고 전한
다. 성종 16년(1485년)에 죽청(竹淸)스님과 희찬(羲贊)스님이 중수하고 중종 38년(1543년)에 보주(寶珠)스님이, 이듬해 중종 39년(1544년)
에 삼인(三印), 지징(志澄) 두 스님이 중수했다고 한다. 정조 4년(1780년)에 중수했으나 6.25 전쟁 후 퇴락한 것을 근년에 크게 중창(重創)
하여 암자의 면모를 새롭게 했다.

우담(愚潭) 정시한(丁時翰·1625~1707)의 『산중일기』 1688년 6월 1일에 ‘묘봉암(妙峰庵)에 갔더니 수좌 진안(進安)·묘훈(妙勳)·초영
(楚英)스님 등이 나와서 맞이하였다’는 기록이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산중일기』에는 묘봉암과 인접한 북동쪽에 사자암(獅子庵)이
있었고, 그 입구에 사자대(獅子臺)가 있다고 했다. 이런 사실은 백화재(白華齋) 황익재(黃翼再·1682~1747)의 사자암(獅子菴) 시를 통해
확인되었다.

巨石菴前峙 / 거석암 앞에 우뚝 솟아있어
淸風腋下來 / 산 아래 골바람이 시원하기만 하네.
仙山看未了 / 산승은 아직 깨닫지 못했는데
餘興在雲臺 / 여흥이 구름처럼 일어나네.

황익재(黃翼再)는 묘봉암을 거석암(巨石庵)이라 했고, 삼오당(三吾堂) 김세락(金世洛·1804∼1873)은 유팔공산기(遊八公山記)에 ‘사람들이
묘봉암의 바위굴을 구경했다(遊於妙峯石穴之間者)’고 했다. 묘봉암 원통전(圓通殿)은 처마처럼 드리워진 큰 바위 아래에 관세음보살상을
봉안하고 그 위에 맞배지붕의 전각을 세운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어, ‘거석암’ 또는 ‘바위굴’로 표현했다.

원통전 비천상 사진

원통전 비천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