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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山)자락에 깃든 구세와 호국의 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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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천선원(龜川書院)-권응수, 권응심

귀천서원 사진

귀천서원

귀천서원은 1676년(숙종 2) 처음 세워졌으며, 임진왜란 시기 충의공(忠毅公) 권응수(權應銖, 1546~1608) 장군과 그의 휘하에서 의병으
로 참전한 권응심(權應心, 1548~1596)을 제향하던 서원으로 사액서원이다. 구천서원으로 불리기도 한다. 서원은 권응수의 출생지 인근
인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치산관광길 185-10(치산리)에 소재해 있다.
귀천서원은 1676년 창건 당시 권응수와 효자로 유명한 조경온(曺景溫)이 함께 배향되었으며, 두 사람은 사돈 사이다. 1685년(숙종 11)
사액을 받았다. 1832년(순조 32) 무관과 문관을 함께 배향하는 것이 온당하지 않다는 향론에 따라 조경온은 회계서원(晦溪書院)을 세워
따로 배향하였으며, 권응심을 추가 배향하였다. 1871년 서원훼철령에 따라 서원이 훼철된 뒤 1923년에 복설하였으며, 이후 향내 출신
의병장 김응택(金應澤)을 추가 배향하였다. 1979년 정부의 호국위인 유적정화사업의 일환으로 같은 신녕면 내 화남리에 권응수의 유물
보존을 위한 충훈각(忠勳閣)을 짓고 경충사(景忠祠)를 옮겨감에 따라 현재 귀천서원에서는 향사를 치르지 않고 있다.

권응수는 본관이 안동, 자가 중평(仲平), 호가 백운재(白雲齋)로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다.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
간 뒤,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날 당시 경상좌도 수군절도사 박홍(朴泓)의 휘하에 있다가 군대가 쫓겨 흩어지자 곧장 귀향하여 5월에
의병을 일으켰으며, 7월 각 고을의 연합의병장이 되어 영천성을 수복하는 데 앞장섰다. 이 영천성 복성전투의 승전은 임진왜란 발발 후
최초의 승리이며, 임진왜란 시기 대표적인 승전으로 평가된다. 이후 그는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박진(朴晉)의 휘하에 들어가 군관으로
활동하며 경주성 복성전투, 문경 당교(唐橋) 전투, 산양 탑전(塔前) 전투 등에 참가하여 경상좌도 병마절도사로 특진되었으며, 전쟁이
끝날 때까지 각종 전투에 참가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밀양부사 등을 거쳐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올랐으며, 1604년 선무공신(宣武功臣)
2등에 책록되고 화산군(花山君)에 봉해졌다. 사후 좌찬성에 추증되고, 충의(忠毅)의 시호가 내렸다. 저술로 『백운재실기(白雲齋實記)』
가 있으며, 1980년 그의 유물은 일괄 보물 제668호로 지정되어 국립진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권응심은 자가 중성(仲星)이며, 권응수의 종제로 그를 따라 의병에 참가하여 영천성과 경주성 복성전투 등에 참전한 뒤, 전란 중인 1594년
무과에 급제하여 경상좌도 병마우후(兵馬虞候)에 올랐다. 1596년 명나라 장군 양호(楊鎬)를 따라 울산의 도산성(島山城) 전투에 참전하다
전사하였다.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1등에 책록되었으며, 1807년 병조참판으로 추증되었다.
귀천서원의 건축물로 사당인 경충사(景忠祠, 3칸)와 내삼문, 강당(정면 4칸, 측면 2칸)이 있으나, 향사를 지내지 않게 됨에 따라 서원 담장
마저 사라진 채 폐허의 모습이 되어 있다. 강당의 앞쪽 왼편에 하마비와 함께 권응수의 신도비각이 서 있다.

귀천서원 사진

귀천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