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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山)자락에 깃든 구세와 호국의 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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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산성

중문 사진

중문

사적 제216호(1971.03.26.)로 지정된 칠곡 가산산성(架山山城)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내성과 중성, 외성을 갖춘 삼중성곽으로 한양도
성(18.6㎞), 금정산성(17㎞), 북한산성(12.7㎞), 남한산성(11.76㎞) 다음가는 큰 규모의 산성이다.

산성은 가산(架山ㆍ901.6m)의 험준한 지세를 활용해 축조한 포곡식 석축성(石築城)이다. 남문과 동문, 중문은 홍예식(무지개 모양) 성문
이고, 서문과 북문은 평거식 성문이며, 상장대와 서장대, 포루, 암문 등의 성벽시설이 성벽과 함께 대부분이 남아있다. 2013년 경상북도
문화재연구원에서 조사한 가산산성 성곽실측조사에 따르면, 내성 둘레 5.771㎞, 외성둘레 4.867㎞, 중성벽 길이 0.431㎞로 공유성벽을
포함한 산성의 총길이는 11.111㎞이고 전체 면적은 2.212㎢로 조사되었다. 가산산성은 동래-한양을 잇는 경상도의 전략요충지에 임진왜
란과 병자호란의 전쟁 경험과 당시 최신 기술로 지형․지세를 최대한 활용하여 축조하였고, 산성 내에 칠곡도호부 관아를 설치하여 상시
거주체제를 구축했다.

가산산성은 동래~대구~한양을 잇는 영남대로의 최고 요충지에 100여 년에 걸쳐 완성한 ‘영남제일관방(嶺南第一關防)’으로 경상감영의
별진(別鎭)이었다. 칠곡도호부는 의성, 군위, 의흥, 신녕, 하양, 경산 등 여섯 지역의 군사지휘권을 가진 군영의 중심지로 인근의 금오산
성, 천생산성, 독용산성, 화산산성과 기각지세(掎角之勢)를 취하여 긴밀한 협공체계를 구축한 거점성곽이었다. 칠곡도호부가 가산산성
안에 있어 초기부터 많은 불편이 따랐으며, 180년이 지난 순조 19년(1819년)에 팔거현의 읍치였던 팔거창지(북구 읍내동)으로
이전하였다. 그 뒤 가산산성은 고종 32년(1895년)에 폐지된 이후 방치되었다.
1950년 8월, 낙동강 방어선에서 벌어진 치열한 포격전으로 성벽이 무너지고 건물들이 불타는 등 큰 피해를 보았다. 남문은 숙종 27년
(1701년)에 완공한 가산산성 외성의 성문이다. ‘가산진(架山鎭)의 남문’을 줄여서 속칭 ‘진남문(鎭南門)’이라 불렀으며, 1954년 대홍수로
남문 전체가 붕괴되었다. 1977년에 남문과 성벽, 수문, 여장 등을 복원하였으나 칠곡 고지도에 표기된 남문의 옹성은 복원되지 않았다.

가산산성에는 천주사를 비롯하여 보국사(寶國寺), 정천사, 청련암 등의 사찰이 있어 장적(帳籍)과 승창미(僧倉米)를 보관하고 총섭(總攝)
이 승장(僧將)들을 지휘하여 포루와 장대, 그리고 성문 등의 수비를 담당하였다. 특히 칠곡도호부가 팔거현으로 이전한 뒤로 산성수호에
크게 기여했다. 가산산성은 총사업비 1,400억 원을 투입하여 2035년까지 성벽과 칠곡도호부 관아 등의 복원계획을 수립하여 성벽을 훼손
했던 성벽 안팎의 유해수목 제거와 공해지 발굴조사 작업을 완료하고 2017년부터 성문과 수문, 포루 등 주요시설물 복원공사가 본격화될
예정이다.

진남문 사진

진남문

동문 사진

동문

서문 사진

서문

북문 사진

북문

성벽 사진

성벽

칠곡도후부 유지 사진

칠곡도후부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