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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山)자락에 깃든 구세와 호국의 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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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사(把溪寺)

 파계사 사진

파계사

파계사의 창건

파계사의 창건에 대해 『조선사찰사료(朝鮮寺刹史料·1911년)』에는 ‘804년 신라 애장왕(哀莊王·800∼809) 때 심지대사(心地大師)가
세웠다’고 전하나 이를 뒷받침할만한 문헌과 유물 및 유적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원통전에 봉안된 관음보살상 밑면에 ‘세종 29년(1447년)
고불(古佛)을 중수했다’는 『묵서(墨書)』와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의 ‘파계사(把溪寺)’ 기록으로 보아 조선 초기 어전에 존속했음
을 알 수 있다. 1935년에 김정래(金鼎來)가 지은 『파계사사적기(把溪寺事蹟記)』에는 ‘선조 38년(1605년)에 계관대사(戒寬大師)가
임진병화때 회진(灰塵)된 것을 중창했고, 숙종 21(1695년)에 현응대사(玄應大師)가 삼창(三創)했다’고 한다.
파계사(把溪寺)란 사명과 진동루(鎭洞樓)의 누각명은 비보풍수(裨補風水) 차원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파계사의 ‘파계(把溪)’는 아홉 갈래
나 되는 경내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지기(地氣)가 흘러나가는 것을 방비한다는 의미가 있고, 진동루는 파계라는 이름만으로
이곳 골짜기의 지기를 제압하기 어려워 중첩으로 누르기 위해 붙인 이름이라 한다. 골짜기의 물을 가둔 파계지 또한 같은 배경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이중 삼중으로 방비하였다.

조선왕실의 원당

파계사 주차장 옆에 부도와 비석이 자리한 부도 밭 안쪽에는 팔공산에서 파계사와 은해사에만 있는 자그마한 『대소인개하마비 (大小人皆
下馬碑)』가 눈길을 끈다. 경상감영공원의 『절도사이하개하마비(節度使以下皆下馬碑)』는 ‘절도사 이하는 모두 말에서 내려라’ 는 뜻인
반면에, 숙종임금이 하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파계사 하마비는 ‘모든 사람은 말에서 내려라’는 뜻이니 이를 통해 조선시대 파계사의
사격(寺格)을 알 수 있다.
파계사는 조선왕실의 원당(願堂)이었다. 숙종 22년(1696년)에 이의현(李宜顯·1669~ 1745)이 찬술한 『원당시초영건기(願堂始初營建
記)』에 ‘숙종임금과 영원대사(靈源大師)의 기연과 연잉군(延礽君) 출생 후 파계사를 원당’으로 삼았던 사실이 적혀 있다.
숙종 38년(1712년)에 왕자군 원당이란 사실을 기록한 『어압완문(御押完文)』과 영조 즉위 후 파계사를 어의궁에 소속시키고 특권을
재확인한 『어의궁완문(於義宮完文)』과 『영조어필(英祖御筆)』, 그리고 헌종 9년(1843년)에 파계사는 어의궁 소속이며 영조의 원비
(元妃) 정성왕후(貞聖王后)의 원당임을 확인한 『예조절목(禮曹節目)』을 통해 파계사가 조선왕실의 원당이란 사실이 확인된다.

 원통전 사진

원통전

 진동루 사진

진동루

 하마비 사진

하마비

건칠관음보살좌상(乾漆觀音菩薩坐像)
보물 제1850호(2014.12.29.)로 지정된 원통전(圓通殿)은 선조 39년(1606년)에 중수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조선시대에는
보기 드문 가구식 기단부이 눈길을 끈다. 원통전에는 보물 제992호(1989.04.10.) 건칠관음보살좌상(乾漆觀音菩薩坐像)이 주불로 봉안하고
있다. 보물 제1214호(1995.01.10.)로 지정된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의 하단 정면에 기록된 화기(畵記)에는 ‘시주대군갑술생이씨(施主大
君甲戌生李氏)’와 ‘강희사십육년정해(康熙四十六年丁亥)’의 기록이 있어 숙종 33년(1707년)에 연잉군(영조)의 후원으로 조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기영각(祈永閣)
원통전(圓通殿) 서쪽에 위치한 기영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기영각의 기단부를 인접한 산령각(山靈閣)의
기단부보다 조금 높게 배치한 것은 왕실에 대한 존숭의 표시이다.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1호(1984.07.25.)로 지정된 기영각(祈永閣)
은 ‘영조대왕을 위해 기도한다’는 뜻으로 숙종 22년(1696년)에 세웠다고 전해진다. 이곳에는 선조, 숙종, 덕종, 영조의 위패를 모셨으나
1910년 국권을 강탈한 일제에 의해 서울로 옮겨졌고, 현재는 탱화가 걸려있다. 한편 기영각은 숙종, 영조, 정조의 어필을 보관했다 하여
어필각(御筆閣)이라 불렸다.

기정각 사진

기정각

부도전 사진

부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