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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790호

[보물 제790호]

영천 은해사 백흥암 극락전(永川銀海寺百興庵極樂殿)

영천 은해사 백흥암 극락전(永川銀海寺百興庵極樂殿) 사진
  • 분 류
  • 수 량
  • 지정일
  • 소재지
  • 시 대
  • 소유자
  • 관리자
  • 기 타
  • 불전
  • 1동
  • 1984.07.05
  • 경북 영천시 청통면 청통로 951-792, 은해사 백흥암 (치일리)
  • 조선시대
  • 은해사 백흥암
  • 은해사 백흥암
  • -

백흥암(百興庵)은 신라 경문왕 9년(869년) 구산선문의 하나인 동리산문(桐裏山門)을 개창한 혜철(惠徹ㆍ785~861) 국사의 발원으로 창건되었다고 전하며, 인종대왕의 태실(胎室) 수호사찰이다.

백흥암 극락전(極樂殿) 팔작지붕의 추녀가 진영각과 심검당 지붕 위로 날렵하게 활개 치며 하늘로 치솟아 오른다. 은해사 대웅전의 예와 같이 일반적으로 사찰 전각의 처마선과 추녀마루는 적멸(寂滅)을 상징하여 차분하고 안정감을 주는 반면에, 백흥암 극락전은 마치 창덕궁 함인정(涵仁亭)의 추녀처럼 하늘을 향해 치솟는 날렵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왕실의 후원이 엿보인다.

백흥암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 인조 21년(1643년)에 극락전 중수를 시작으로 현종 14년(1673년)에 극락전의 아미타삼존불과 여러 전각의 단청과 벽화가 새롭게 조성되었다. 정조 22년(1798년) 정월, 경상감사가 발급한 완문 (完文)에는 ‘백흥암은 막중한 수호처일 뿐 아니라 선조(先朝)대에 어압(御押)이 있어 지극히 존엄한 곳이므로 추호 라도 침해하는 폐단이 있으면 즉시 감영에 보고하여 엄벌에 처한다’고 할 만큼 당시 백흥암의 위상은 대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