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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신비한 돌을 감추니 사적의 기록이 환히 빛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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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해사 경내 금석문

은해사 경내에는 ‘은해산문(銀海山門)’, ‘한시바위’, ‘아미타불 바위’, ‘은해사유공송(銀海寺有功頌)’, ‘삼인암(三印岩)’ 등의
바위글씨와 ‘은해사 일주문 나무아미타불’, ‘부도전 입구 나무아미타불’, ‘대소인하마비(大小人下馬碑)’, ‘극락보전 괘불대 석주
(石柱)’, ‘인종대왕태실비(仁宗大王胎室碑)’ 등의 금석문(金石文)이 전한다.

은해사 일주문 아미타불

은해사 일주문을 들어서면 오래전부터 은해사 입구를 지켜왔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표석이 반긴다. 자연석을 비석처럼
다듬어 전면에 ‘나무아미타불’을 새겼는데 글씨가 단아하면서도
유려한 필력이 느껴진다.

일주문 아미타불 각석 사진

일주문 아미타불 각석

은해사 부도전 아미타불

은해사 일주문을 지나 왼쪽으로 솔밭 길로 들어서면 고승의
부도와 비석, 그리고 은해사 영건(營建)에 많은 후원을 베풀었던
경상도 관찰사와 영천군수 등의 송덕비 등을 모아둔 부도전(浮屠
殿)이 있다. 부도전 입구에는 일주문에 이어 또 하나의 ‘나무아미
타불’의 표석이 서있다. 앞의 표석과는 달리 중앙에 한자로 ‘나무
아미타불’을 쓰고 오른쪽에는 한글로 ‘나무아미타불’을 새긴 것이
이채롭다.

은해사 부도전 아미타불 각석 사진

은해사 부도전 아미타불 각석

은해사 하마비

부도전을 지나면 은해교 앞에 있는 ‘대소인하마비(大小人下馬
碑)’는 팔공산에서 은해사와 파계사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것이다. 은해사가 왕실원당이 되자 중종 35년 경자년(庚子年·
1540년)에 나라에서 내린 이 하마비는 팔공산의 금석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은해사 하마비 사진

은해사 하마비

은해사 괘불대

극락보전(極樂寶殿) 앞에 있는 괘불대(掛佛帶) 석주(石柱)에는
‘계해팔월조성(癸亥八月造成)’이란 글씨로 보아 순조 3년
(1803년) 계해년(癸亥年)에 세운 것이다. 괘불대는 괘불(掛佛)을
걸기 위한 지지대로 두 개를 한조로 해서 좌우에 세웠다. 양쪽의
괘불대에는 줄이 걸려있고 중생들의 소원을 담은 소원지가 매듭
지어 있다.

은해사  괘불대 사진

은해사 괘불대

은해산문 바위

은해사 보화루(寶華樓) 앞에 있는 큼직한 바위에 ‘은해산문
(銀海山門)’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바위를 38cm × 71cm
크기로 다듬고 ‘은해산문(銀海山門) 임인(壬寅) 지군(知郡)
이장용(李章鎔)’이라고 새겼다. 은해산문은 ‘은해사를 입구를
뜻하는 말이다. 1901년부터 1902년까지 영천군수를 역임했던
이장용(李章鎔·1868년~1946년)이 임인년(壬寅年·1902년)에
새긴 글씨이다. 이 바위는 원래 은해사 입구에 있었으나 근래에
사찰을 정비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기는 과정에서 바위 위치가
바뀌었다. 글씨가 위로 향하고 있어 유심히 살펴보지 않으면
무심결에 지나치기 쉽다.

은해산문 바위 사진

은해산문 바위

은해사 한시바위

은해사 템플스테이(중악관) 건물 서쪽모서리,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는 팔공산에서 유일한 ‘한시(漢詩)’를 새긴 바위가
있다. 바위는 43cm × 65cm 크기로 반듯하게 다듬어 영천(永川)
성호운(成昊運)이 7언 절구를 짓고 지금의 경주 사룡산(四龍山)에
머물렀던 만회(晩悔) 스님이 쓴 글씨를 새겼다. 성호운(成昊運)과
만회(晩悔) 스님의 행적을 알 수 없어 신미년(辛未年)이 언제인지
알 수가 없다.

은해사 한시바위 사진

은해사 한시바위

我與公山倂我州 / 나와 팔공산은 우리 고을에 함께 있어
花辰月夕訪雲樓 / 꽃 피고 달뜨는 저녁이면 운부암을 찾는다네.
白髮旋疎餘素癖 / 백발이 어느새 엉성하지만 평소의 버릇은 남아
聊將此石活千秋 / 장차 이 돌을 천추토록 살아 있게 하리라.

辛未冬十月 四龍山下 晩悔 書 / 신미년 겨울 시월에 사룡산하의 만회가 쓰다.

은해사 아마타불 글씨 바위

은해사에서 나와 산내암자 가는 길에 처음 만나는 다리를 건너면
오른쪽 길옆에 검은색을 머금은 큰 바위가 서 있다. 길에서 보면
바위를 네모지게 파고 ‘안윤명(安潤明)’이란 이름을 횡서로 새겼고,
그 왼쪽에 ‘박창호(朴昌鎬)’란 이름을 종서로 새겼다. 이 바위의
위쪽 경사면에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을 중심으로 왼쪽에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오른쪽에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의
아미타삼존불을 큰 글씨로 새겼다. 그 아래에는 이보선화(李普善華),
이대명화(李大明華), 박보광화(朴普光華), 이안락화(李安樂華),
장대심행(張大心行)이란 이름이 새겨있어 이 글씨를 새긴 후원자로
보인다.

은해사 아마타불 글씨 바위 사진

은해사 아마타불 글씨 바위

은해사유공송(銀海寺有功頌)

은해사에서 산내 암자로 가는 길에 두 번째 만나는 다리에서
보이는 이끼가 무성한 바위에 새긴 ‘은해사유공송(銀海寺有功頌)’
에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흔적이 남아있다. ‘당상대감흥선군
(堂上大監興宣君) 순상국신석우(巡相國申錫禹) 정사유월일
(丁巳六月日) 주사수의서(主事輸誼書)’이란 글씨로 보아 흥선군이
수릉(緩陵)의 천장(遷葬)을 지휘 감독하는 당상도감(堂上大監)이
되자 수릉에서 사용하는 숯을 공급하는 팔공산에 관심을 가졌고,
철종 8년(1857년) 6월에 순찰사 신석우(申錫禹)로 하여금 인종대왕
태실(胎室)에 제사를 지낸 것을 기려 새긴 것으로 보인다.

은해사 유공송 사진

은해사 유공송

삼인암(三印岩)

김유신 장군의 수도처로 널리 알려진 중암암(中巖庵) 뒤에 있는
바위에 새긴 이 글씨는 200cm×73cm 크기로 세 토막으로 잘린
바위 오른쪽에 예서체로 깊게 새겨져 있으며, 특히 암(岩)자의
모양새가 건너편 산의 모양을 닮아 있어 이채롭다. 일설에는
불교의 삼법인(三法印)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삼인암(三印岩) 사진

삼인암(三印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