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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턱 쌓아 올린 돌담에 무심(無心)한 세월 배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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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수동 당산

용수동 당산 사진

용수동 당산

1967년 문교부에서 설문조사 자료를 간행한 『한국의 마을제당』에는 팔공산과 인접한 금호강 북쪽의 대구동구와 북구지역, 칠곡군의
동명면과 가산면지역, 군위군의 부계면·효령면·산성면지역, 영천시 신녕면. 청통면, 화남면지역, 경산시 하양읍과 와촌면지역 등에는
마을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는 87개소 이상의 마을제당이 존재했으나 대부분 사라지고 이제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구 동구
용수동 420번지에 자리한 대구광역시 민속문화재 제4호(1995.05.12.) 용수동 당산(龍水洞堂山)은 팔공산 부인사 아래에 위치한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제당의 하나로 유구한 역사와 더불어 비교적 완전한 모습을 하고 있다.

용수동 당산과 인접한 곳에 있는 용수동 와요지는 1968년 경북대학교에서 조사한 결과, 통일신라 후기부터 고려 및 조선시대에 이르는
기와가 출토되었고, 특히 ‘동수미륵당(桐藪彌勒堂)’ 명문의 기와로 동화사를 비롯한 부인사 등에 기와를 공급했던 곳이다. 용수동에서
발견된 와요지는 신라 말부터 이곳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으로 고려시대에는 고려 초조대장경을 봉안했던 부인사의 사하촌(寺下村)으로,
조선시대에는 대암(臺巖) 최동집(崔東㠎)의 은거지이자 백불암(百弗菴) 최흥원(崔興遠)이 부인동 향약을 펼쳤던 유서 깊은 곳이다.
용수마을 입구에 자리한 당산(堂山)은 수백 년은 됨직한 느티나무 세 그루 사이에 약 3m높이의 돌탑을 둥글둥글한 자연석을 원형으로
차곡차곡 단정하게 쌓아올린 돌무더기로 맨 위부분에 선돌형의 입석을 올려놓았고, 자연석 제단을 마을이 바라보이는 북쪽에 두었다.
당산 옆에 있는 작은 느티나무 가지에는 알록달록한 천 조각이 걸려있는데 이는 신에게 바치는 공헌물(供獻物)의 의미를 지닌다. 이곳에서
매년 정초에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당산제(堂山祭)를 지내는데, 제사비용은 마을 공동으로 마련하고 마을 어른들이 모여 제관을
선출한다. 선출된 제관은 제사 당일 마을 앞개울에서 목욕재개한 후 혼자서 제사를 올린다고 한다.

마을에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곳에 맨 처음 자리 잡고 살게 된 배씨(裵氏)와 구씨(具氏)가 마을 입구에 나무를 심고 돌을 쌓아 당산제를
지내면서 이 당산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마을 주민이 한 자리에 모여 함께 진행하던 당굿과 동제의 풍습은 1970년대 후반부터 자취를 감추었지만 당산은 여전히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서 당당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당산제(堂山祭)는 동민들의 심적 유대와 단합을 촉진시켜 소속감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고, 오랜 세월 조상들이 지내왔던 당산제를 통해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구심점이 되며, 또한 동민들의 협의로 제수비용을 염출하고 제관을 선출하는 등 민주적으로 운영되었던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