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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턱 쌓아 올린 돌담에 무심(無心)한 세월 배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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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청통면 보성리 암각화

보성리 암각화 사진1

보성리 암각화

보성리 암각화의 발견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암각화 유적은 울산(대곡리·천전리), 고령(양전리·안화리·지산동), 포항(칠포리·인비리), 경주(석장동·
상신리), 영천 보성리, 영주 가흥동, 남원 대곡리, 안동 수곡리, 함안 도항리, 여수 오림동, 남해 양아리 등 16개소이다. 이 가운데 남원
대곡리와 여수 오림동 유적을 제외하면 주로 형산강과 낙동강에 인접한 경상도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영천 보성리 암각화는 은해사에서
동쪽으로 약 5㎞ 떨어진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보성리 666-2번지 속칭 봉수마을 입구에 있다.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원래 서쪽으로
약 50m 떨어진 개울가 근처에 있었으나 1987년 경지정리작업을 하면서 거북모양의 길조라 하여 현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1993년 6월 경, 영천향토사연구회에서 청통 지역을 답사하는 중에 보성리 마을입구에서 거북모양의 바위에 암각화을 발견하고 경주
박물관에 조사를 의뢰하면서 학계에 처음 알려졌다. 거북형상의 화강암 바위에 새겨진 암각화는 길이 335㎝, 폭 154㎝(앞면 99㎝, 뒷면
55㎝, 직선 155㎝), 높이 30㎝의 크기로 양면에 방형기하문 암각화 16개와 여러 개의 바위구멍이 새겨져 있다. 우리나라 암각화 유적
16개소 가운데 방형기하문 유적은 10개소로 암벽이 아닌 독립된 바위에 암각화를 새긴 예는 영천 보성리와 경주 상신리 두 곳이다. 그리
고 방형기하문 암가화 유적의 대부분이 하천변이나 하천상류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의 작은 시내는 용연천을 통해 금호강으로 이어진다.
6,500만년 전 중생대 백악기 말기에 지하 깊은 곳에서 마그마가 관입되어 형성된 화강암이 평면상 타원형태의 팔공산의 기반암체를
구성하였고, 주변의 변성퇴적암은 침식에 견디고 남아서 팔공산 화강암체를 반지모양으로 감싸고 있다. 청통면과 인접한 신녕면과 화남면
일대에서 발견된 BC 3~2세기경의 세형동검·동과 등의 청동기를 사용했던 상당한 세력의 존재가 확인된다. 이들이 약 5㎞ 서쪽에 자리한
팔공산 화강암체에서 암각화를 새길 바위를 보성리까지 운반해서 암각화를 새겼던 것으로 추정된다.

보성리 암각화의 문양

보성리 암각화는 보호각에서 보이는 전면에 5개, 뒷면에 11개 등 모두 16개의 문양이 확인됐다. 확인된 16개의 문양 이외에도 문양의
흔적이 다수 발견되었으나 심하게 마멸되어 식별할 수 없었다.

보성리 암각화 사진2

보성리 암각화

보성리 암각화 분포 이미지

보성리 암각화 분포

보성리 암각화의 여러 문양 이미지

보성리 암각화의 여러 문양

보성리 암각화의 여러 문양 이미지

보성리 암각화의 여러 문양

보성리 암각화의 성격

방형기하문 암각화는 마제석검의 검파식에서 파생된 검파식을 기하학적 문양으로 표현하여 새긴 것이다. 팔공산에서 운반해 온 바위에
방형기하문 암각화를 조각하는 의례를 통해 지모신(地母神)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 농경의 풍요와 다산을 기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보성리 암각화가 자리한 금호강 상류지역은 포항·경주를 중심으로 하는 형산강일대와 낙동강 일대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포항
인비리와 칠포기 등 영일만 일대의 해안에서 제작되기 시작한 방형기하문 암각문화가 경주 석장동과 상신리를 거쳐 보성리의 서쪽에
고령의 양전리와 안화리, 지산동, 북쪽에 영주 가흥동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가교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 참고문헌 : 영천 보성리 암각화의 성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