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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턱 쌓아 올린 돌담에 무심(無心)한 세월 배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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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산(鳥山,造山)에 얽힌 전설

고려 초기 무태(無怠;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은씨(殷氏) 집안이 부락을 이루고 살았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무태(無怠)는
지금의 지형과는 무척 달라 마을 앞에 내(川)가 있었고 은씨(殷氏)들은 방우들에 살았다고 한다. 은씨(殷氏) 집안에는 대단한 부호(富戶)
한집이 있었는데 명문집안답게 손님들이 끊일 새가 없었다. 은씨(殷氏)집 종부(宗婦)는 손님을 대접하느라 귀찮고 힘이 들어 어떻게 하면
손님이 오지 않을까 고심하였다.

어느 날 대사(大師)가 집에 시주를 오니 종부가 그 동안의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손님이 어떻게 하면 오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스님은 집 뒤의 산을 파헤치면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질 것이라 하였다. 집안이 망하면 자연히 손님이 끊어지니 그것은 집안을 망하게 하는
방책이었다.
이런 당연한 이치를 망각한 은씨(殷氏)집 종부(宗婦)는 남몰래 북으로 보고 머리를 감고 몸을 깨끗이 한 후 하인과 인부를 시켜 산을 파
없애게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산을 파 내려가니 학(鶴)이 3마리가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그 후로 대사의 말이 적중해서 종부의
남편을 비롯해 은씨(殷氏)집안의 남자들은 하나, 둘 죽어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였다. 은씨(殷氏)집 종부(宗婦)는 그제야 뉘우치고 하인을
시켜 산을 다시 이루게 하였으나 날아간 학(鶴)은 돌아오지 않고 집안의 살림도 다시는 일어서지 않았다고 한다. 그 뒤 사람들은 학(鶴)이
날아간 그 산을 가리켜 조산(鳥山)이라고도 하며, 은씨(殷氏)집 종부(宗婦)가 다시 산을 돌로 쌓아 올리게 하였다고 하여 조산(造山)
이라고도 한다.

당시의 은씨(殷氏)들은 지금은 무태(無怠)에 겨우 2·3호 집안만 살고 있을 뿐이며, 조산(造山)은 고속도로가 산 아래로 지나고 과수원이
생겨 흔적은 별로 찾을 수 없고 자리만 확인될 뿐이다.

[출전 : 팔공산사적조사보고서. 1987.02.25. 대구직할시·경북대학교]
[제보자:대구직할시 북구 서변동 1057번지. 이재웅(李在雄), 남, 48세, 농업, 채록일자;1986. 10.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