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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턱 쌓아 올린 돌담에 무심(無心)한 세월 배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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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성사(法聖寺)의 내력

법성탑(法聖塔) 사진

법성탑(法聖塔)

칠곡군 동명면 기성2동 마을 밑에는 큰 봉우리 3개로 이루어진 ‘왕산’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은 신라말기 견훤과의 싸움에서 패한 고려
태조 왕건이 잠시 쉬어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왕산의 앞쪽으로 일명 ‘법성탑(法聖塔)’이라고 하는 기성동 논 가운데에 서있는 3층 석탑은 8개의 장방형 돌로 받친 가로 5m, 세로
4m의 하층 기단 위에 가로 1.97m, 세로 1.97m의 상층기단이 놓여 있고, 그 위에 탑신(塔身)이 세워져 전체 높이가 약 5m에 달하고 있다.
이 탑은 전체적인 형체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 형태이지만, 다른 탑에 비해 약간의 특색이 보여 진다. 각 층마다
하층부분만 5개의 계단을 이루었고, 화강암으로 된 기단 중에 상층 기단에는 우주(隅柱)나 탱주(撐柱)가 없으며, 4면(한 면은 1971년
복원시에 만들어 넣었음)에 커다란 안상(眼象)이 새겨진 것이 특색이다. 원래는 5층탑이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세워진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파괴되고 방치되어 탑 전체의 균형이 깨어지고 윗부분은 손실되었던 것이 1971년 재건되어 지금의 형태로 남아있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삼사백년 전에 없어진 이 절은 신라 말기에 팔공산 기슭에 세워진 것이다. 이 법성사(法聖寺)라는 절은 오랜 세월동안
크게 번창하여 그 마을 일대가 하나의 큰 절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절이 크게 번창하게 된 연유는 법당의 천정에서 매 끼니 때마다
그 절에 있는 사람의 식량으로 꼭 맞는 쌀이 쏟아져 내려 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하루는 밥을 짓는 상좌가 평소에도 아주 신기하게 여기던 차에, 어떻게 하면 한꺼번에 많은 쌀을 나오게 할 수 있을까 하여서
큰 나무를 가지고 쌀이 나오는 구멍을 크게 하려고 깊이 쑤시자, 그 곳에 피(血)가 쏟아져 나와 온 사원을 덮었는데 이것이 빈대가
되었다고 한다. 이리하여 이 사원은 점차 신도가 줄고 빈대가 들끓게 되어 마침내 폐사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논 사이에 석탑 하나가
외로이 옛 영화를 지키고 있으며, 그 주위에서 나오는 기왓장과 석탑 주위에 지금도 빈대가 많이 나와 이 전설을 뒷받침하여 주고 있다.
또한 탑 옆에 지금은 묻혀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깊이를 알 수 없는 샘이 있어서 옛날 법성사가 크게 번창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출전 : 팔공산사적조사보고서. 1987.02.25. 대구직할시·경북대학교]
[제보자:칠곡군 동명면 기성2동, 은정달, 남, 47세, 농업. 채록일자;1986. 10.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