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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정수(御井水)에 얽힌 전설

도덕암 어정수 사진

도덕암 어정수

칠곡군 동명면에 있는 도덕암(道德庵)은 원래 이름은 칠성암(七星庵)이었다. 칠성암(七星庵)은 고려 광종(光宗) 4년에 혜거대사(惠居大師
;속명 智回)가 창건하였다.

당시 고승이던 혜거대사(惠居大師)를 광종(光宗)이 왕사(王師)로 모시려고 여러 번 사람을 보내었다. 그러나 대사는 번번이 왕명(王命)을
거절했다고 한다. 그래서 광종(光宗)은 친히 어가(御駕)를 몰아 지금의 도덕암(道德庵)으로 오게 되었다. 임금이 직접 왕사로 모실 것을
권했으나 대사의 대답은 여전했다. 임금이 돌아가려고 하자, 대사는 이것도 속세의 인연(因緣)이라 하여 며칠간 쉬면서 속병을 고치라고
하였다. 임금이 속병이 있어 3일간 쉬면서 절에 있던 샘물을 복용하였는데 씻은 듯이 속병이 나았다. 이런 일이 있는 뒤로 이 샘물을
‘어정수(御井水)’라 부르게 되었다. 이 일로 임금이 절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 이 절을 칠성암(七星庵)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후세
사람들이 이 ‘어정수(御井水)’를 약물이라 부르고 있다. 지금도 이 절을 찾는 신도들은 으레 약물을 찾는다고 한다.

이후 칠성암으로 전해오다가 조선 철종(哲宗) 4년에 몽계(蒙溪)스님에 의해 도덕암(道德庵)으로 개칭되었다. 이 이름은 당시에 고승(高僧)
이었던 몽계(蒙溪)스님을 모두가 큰 스님이라 불렀으며, 큰 스님이 공부하셨다고 해서 길 도(道)자, 큰 덕(德)자를 써서 ‘도덕암(道德庵)’
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도덕암(道德庵)으로 개칭했으나 절이 협소하고 자리도 마땅치 않아 고심하였는데 스님의 꿈속에 대사(大師)
한분이 나타나, ‘지금의 자리보다 어정수(御井水)가 있는 곳이 부처님의 뜻이니라’하고 사라졌다. 스님은 즉시 법당(法堂)을 지금의
어정수(御井水)가 있는 곳으로 옮겨짓게 하였다. 풍수설을 빌자면, 이곳은 연소혈(燕巢穴)이라 하여 제비가 복(福)을 물어주듯이 박복한
사람이 치성을 드리면 소원을 얻는다는 곳이다. 그리하여 지금도 많은 신도들이 법당(法堂) 뒤 자응전(慈應殿)에 와서 소원을 이루고자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출전 : 팔공산사적조사보고서. 1987.02.25. 대구직할시·경북대학교]
[제보자:칠곡군 동명면 도덕사. 남, 58세, 주지 관허(貫虛)스님 채록일자;1986. 10.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