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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산영악(神山靈岳)에 서풍이 불더니 산의 호흡, 상제(上帝)의 자리에 닿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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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기·유산시 이야기 등산로

유팔공산기 遊八公山記 - 최흥립崔興岦
조회|246 2018-02-26


최흥립 - 유팔공산기 등산로 코스 이미지


<최흥립 - 유팔공산기 등산로 코스 이미지>



유팔공산기 遊八公山記


가산산성을 지나 부인사 농연정聲淵亭에 들르다


최흥립崔興岦


최흥립崔興岦(1736∼1809)은 조선 후기 유학자로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산보山甫이고, 호는 천옹喘翁으로 족숙 백불암百弗庵 최흥원崔興遠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과거에 여러 번 실패한 후 벼슬을 포기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주자서朱子書』와 『심경心經』에 대해 탐구하였고, 시문詩文과 서예書藝에도 뛰어나 예원藝苑에서도 명성이 높았다. 문집으로 『천옹문집喘翁文集』이 있다.

최흥립崔興岦의 『유팔공산기遊八公山記』는 가산산성 진남문鎭南門에서 출발하여 동문東門에서 팔공산 종주능선을 따라 파계재에서 파계사把溪寺로 내려와 부인동 농연정聲淵亭을 들렀다가 부인사에서 숙박하고 다음날 동화사桐華寺에 이르는 여정을 기록한 것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전국토가 참혹한 피해를 입었다. 인조 17년(1639년)에 조정에서 공산산성의 가축을 검토하라는 명이 내려오자, 경상감사 이명웅李命雄(1590~1642)은 대구에서 멀리 떨어진 공산성을 폐기하고, 영남대로의 요충지 팔거현의 가산架山(901.6m)의 험준한 지세를 활용한 가산산성 축성을 건의하였다. 가산산성은 인조 17년(1639년) 9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 10만 여명의 남정男丁을 동원하여 축성을 시작하여 영조 17년(1741년)까지 100여년에 걸쳐 완성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내성과 중성, 외성을 갖춘 삼중성곽으로 테뫼식과 포곡식을 혼용하여 축성한 석성石城이다. 가산산성(11.111㎞)은 한양도성(18.6㎞), 금정산성(17㎞), 북한산성(12.7㎞), 남한산성(11,76㎞) 다음가는 큰 규모로 1950년 낙동강방어선의 중심에서 북한군의 공세를 성공적으로 방어하여 우리 대한민국을 지켜냈던 호국의 성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