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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산영악(神山靈岳)에 서풍이 불더니 산의 호흡, 상제(上帝)의 자리에 닿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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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간자(八簡子) 봉안설(奉安說)

1931년에 세운 『팔공산동화사적비(八公山桐華寺跡碑)』에는

동사(東史)에 기록된 심지왕사의 행적을 살펴보면, 왕사가 미륵보살로부터 전래된 간자(簡子) 가운데
여덟 번째와 아홉 번째 두 개를 속리산 영심법사로부터 얻어 이곳에 소중하게 간직하여 두었다.
고려 예종 때에 이르러 대궐 안에 두고 예불을 드리다가 아홉 번째 간자를 분실하였다.
왕은 이를 몹시 미안하게 여겨 송나라에서 가져온 부처님의 치아를 대신 보내왔다.
본사에서는 미륵보살의 유훈 가운데 여덟 번째 것은 성불의 종자를 새롭게 훈육하는 것으로
공산에 다시 모시게 된 것은 보기 드문 상서로운 징조로서 기념할 만하다고 생각하여‘공산(公山)’두 글자 위에
여덟 팔(八)자를 더하여 팔공산이라 이름 하였다.[按東史 心地王師行蹟 師得 自彌勒菩薩 傳來簡子中八九二
個於俗離山永深法師 而寶藏於此 至高麗睿宗 致內瞻敬 失九者一簡 王極未安 以自宋來 佛牙代送 而本寺彌勒
遺訓中八者 新熏成佛種子 還奉於公山 思以稀有瑞徵爲記念 加八字於公山上 名八公山也]

고 적고 있다.

『삼국유사』 심지계조(心地繼祖)에는

고려 예종이 일찍이 부처의 성스런 간자를 맞아 대궐 안에서 보고 예배드렸다.
갑자기 아홉 번째 간자 하나를 잃어 상아로 만든 간자로 갈음하여 본사로 돌려보냈다.
지금은 빛깔이 점점 변해서 같은 한 빛깔이 되어 새것과 옛것을 가리기 어렵다. 그 바탕은 상아도 옥도 아니다.
[本朝睿王嘗取迎聖簡致內瞻敬忽失九者一簡以牙代之送還本寺今則漸變同一色難卞新古其質乃非牙非玉]

고 하여 ‘고려 예종이 아홉 번째 간자를 분실하여 상아로 만든 간자로 갈음하여 본사에 돌려보냈다’는 내용이 있으나 ‘이를 기념하여
팔공산으로 이름했다’는 기록이 없어 ‘팔간자설(八簡子說) 봉안설(奉安說)’은 1931년 『팔공산 동화사적비』를 세우면서 지어낸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