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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산영악(神山靈岳)에 서풍이 불더니 산의 호흡, 상제(上帝)의 자리에 닿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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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수산(桐藪山)의 오류

달성군지(達成郡誌) 사진

달성군지(達成郡誌)

1930년에 간행한 『달성군지(達成郡誌)』에

팔공산을 옛날에는 동수산(桐藪山)이라 했다.[八公山古稱桐藪山]

는 기사가 팔공산을 동수산(桐藪山)이라 했던 최초의 기록이다.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에서 출토된 『민애대왕석탑사리호기(敏哀大王石塔舍利壺記)』의 ‘동수원당(桐藪願堂)’이란 기사와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동수(桐藪)에서는 깃발만 바라보고도 무너져 흩어졌다’는 기사,『고려사』에 ‘태조가 견훤(甄萱)과 공산(公山)의 동수(桐藪)에서 싸웠는데 불리했다’는 기사에 나오는 동수(桐藪)는 지금의 동화사(桐華寺)를 말한다. 수(藪)는 사(寺), 즉 절을 뜻한다.
사(寺)는 사(社)·원(院)·수(藪)·난야(蘭若)·가람(伽藍)·찰(刹)·암(庵) 등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달성군지(達成郡誌)』의 동수산(桐藪山)은 근거가 없다. 우리나라 사서(史書) 어디에도 공산(公山)을 동수산(桐藪山)이라 한 예는 찾아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