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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산영악(神山靈岳)에 서풍이 불더니 산의 호흡, 상제(上帝)의 자리에 닿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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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악 제천단의 위치와 봉명

제천단 사진

사진의 제천단은 최근에 만든 것이다.

신라인은 산악을 경외(敬畏)하고 숭배하고 신앙했다. 산악숭배를 통해 국가를 진호(鎭護)하고 국태민안을 이루고자 했으며 개인의 소원
성취와 수복을 기원했다. 신라가 삼한일통을 이룬 뒤에 삼사(三祀), 즉 대사삼산(大祀三山)과 중사오악(中祀五岳), 그리고 24개 명산(名山)에 제사하는 소사(小祀)의 산악신앙이 완성되었다.
그중에서 중사(中祀)는 나라의 동서남북(東西南北)과 중앙의 5방에 위치한 토함산, 계룡산, 지리산, 태백산 그리고 공산(팔공산)의 명산
영악(名山靈岳)에 지내는 제전으로 임금이 친제(親祭)하였다.
고려시대 팔공산에서 제천(祭天)했던 대표적인 사례는 무신집권 세력이 경주 · 영천 · 청도 · 대구 · 청송 등지에서 민란이 일어나자 토벌
작전의 평정을 기원하고, 무사히 평정한 것을 사례하며, 공산에서 올렸던 3번의 제사로 이규보(李奎報·1168~1241)가 지은 『공산대왕에
올리는 제문(祭公山大王文)』과 『공산대왕에게 말을 바치는 제문(獻馬公山大王文)』,그리고 『공산대왕에게 사례하는 제문(公山大王謝祭文)』이 전한다.
조선시대에는 『경상도지리지』에 ‘수령이 공산밀대천왕신위에게 제(祭)을 지낸다’고 하였고,『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지리지』에 ‘신라
때에 부악(父嶽)이라 일컫고, 중악(中嶽)에 비겨 중사(中祀)를 지냈는데, 지금은 수령(守令)으로 하여금 제사를 지내게 한다’고 하였다.